자유공원. 원래 이름은 만국공원이었으나 맥아더 장군 동상이 만들어지고 이름이 바뀌었다. 각국조계지는 항구와 거리가 있는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항구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그 서양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공원을 만든다는건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또한 대변할 만한 저택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차라리 민가였다면 변형 보수가 되더라도 남아있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 되었다. 자유공원의 맥아더상 자리에는 세창양행 사택이 있었고, 한미수교 기념탑 자리에는 존스턴 별장이 있었다. 다시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동상과 기념탑이 갖는 의미 때문에 실현되는데 어려움이 있다.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인천내항
자유공원 내 공연장. 관광 활성화를 위한 공연이 진행중이었다. 하지만 전망대 바로 옆에 위치한 공연장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는 소음에 가까웠다.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다보면 인천내동교회가 있다. 외벽 재질은 화강암으로 보이고 지붕에는 기와가 올라가 있다. 한국전쟁 때 파손되어 195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인천내동교회 현판. "개항로"라는 주소가 붙어있고, 2007년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598개 교회에 전해진 기념동판이 붙어있다.
인천내동교회 내부.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바닥은 마루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인천내동교회 내부. 기둥과 외벽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지만 내부 지붕은 목조 트러스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공회가 자리잡은 곳 답게 성공회 관련 건물들이 보인다.
자유공원 주변은 서울 강북의 고급주택가를 보는듯 하다. 조계지 시설 이후에도 부촌의 성격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의 옛 지명 "인주"라는 말도 보인다.
인천역사자료관. 일본인이 살았던 건물로 해방 후에 개축되어 한옥과 일본식 집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제물포 구락부 외관. 회칠 마감된 조적 건물로 창 위의 페디먼트가 특징이며 러시아 공사관을 설계한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한 건물이다.
제물포 구락부 2층 입구. 1층과 연결되는 내부 계단은 없고 입구가 따로 있다.
제물포 구락부 내부. 현재 제물포 구락부 건물에서는 달마다 근대 인천에 영향을 미친 나라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제물포 구락부 내부. 개항 이후 인천에 모여든 정계 재계 고위급 인사들의 사교장소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