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중인 논문에 마지막으로 들어가면 좋겠다 상상했던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거의 두 주 동안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이래서는 스스로 정한 마감일을 넘기겠구나 싶어서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비우기가 어려워서 쓰다가 계속 멈칫거리게 되네요. 그래서 다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논문 작성과 관련된 다른 책과 함께 사서 이것은 꽃아만 두었다가 오늘 펴봤습니다. (어디서 일 못하는 애들 특징 얘기할 때 비슷한 행동을 들었던것 같기는 한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계속 불안하니 마중물 느낌으로…)

글이 좋네요. 이런 종류의 책은 내용 좋아도 글빨이 안따라줘서 잘 안읽히는 것도 많았단 말이죠. 외부에서 자료를 끌어다 쓰면서도 논문투가 아니라 본인의 느낌 속에 잘 녹여내신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논문작성법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오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니고요, 연구자에게 논문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성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논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몰랐던 지난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연구가 논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저자의 경험담을 섞어서 쓴 대목입니다. 책의 앞 부분과 뒷 부분(특히 15장)에 나옵니다. 연구책임자급이 아니라면 대부분 위에서 준 주제를 놓고 연구하는 일이 본인 업무에서 가장 클텐데요, 처음에는 연구한 결과를 논문으로 만드는게 감이 잘 안잡힙니다. 저는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도 어려워 한다니 위안이 된 것 같네요. 어려운 이유는 연구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주운 헝겊들을 다 풀어서 실오라기를 다시 한 줄기로 묶고 새로 직조한 천으로 옷을 한 벌 만드는 느낌입니다. 연구책임자가 이제 '정리'해서 논문을 내자고 했을 때 이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서처럼 정리를 해버리면 버림받고 맙니다.

 

주변 분들에게 주저자로 첫 논문을 어떻게 썼는지 종종 물어봅니다. 그림 빼고 글은 거의 다 지도교수님이 다시 쓰다시피 했다는 분도 있고, 그래도 방법이나 결과 부분은 본인이 쓴 내용이 많이 살아남았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자력으로 쓰기는 어려웠다는 경험이었어요. 곱든 밉든 그래도 봐줄 사람이 있을 때 연습을 많이 해보는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게 글쓰기 기법과는 또 다른거라서 글을 잘 쓴다는 분들도 어려움을 겪더라고요. 오히려 평소에 다른 글은 잘 못쓰는데 논문은 후루룩 내는 분도 봅니다. 논문에서 글맛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남궁석 지음)은 이공계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하는데, 이 책은 입학 후 고군분투하고 있을 대학원생과 논문은 쓰고 싶은데 감이 안잡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줄 정리된 원리나 법칙보다 비슷한 문제에 대해서 남의 고민을 듣는게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는 의생명 분야와 거리가 멀지만 분명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GrADS 인터프리터는 어떤 명령줄을 넣고 엔터를 치는 순간에 내부 명령/함수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입력된 것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스크립트 파일이 존재하는지 찾습니다. 이 글에서는 스크립트 파일들을 넣어둔 디렉토리를 정의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사용자가 스크립트 형태로 작성해둔 파일은 GrADS 인터프리터에서 명령어(*.gs)나 함수(*.gsf)로 사용할 수 있는데요, 대부분 사용자들은 GASCRP 쉘 환경변수를 설정해서 정의하고 있을겁니다. 스크립트 파일이 /opt/grads/script에 있고 bash를 사용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정의하겠죠.

export GASCRP=/opt/grads/script

그리고 시스템 관리자가 미리 넣어둔 스크립트들 외에 본인이 파일을 더 추가하고 싶을 때, 많은 분들이 기존 스크립트를 전부 복사해서 본인 홈디렉토리에 넣고 환경변수를 다시 설정한 다음 본인이 원하는 파일을 추가해서 사용하시더라고요. 이런 식으로요.

cp /opt/grads/script/*.* /home/user/opt/grads/script/
export GASCRP=/home/user/opt/grads/script
cp new_thing.gs /home/user/opt/grads/script/

하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시스템관리자가 스크립트 파일을 업데이트하는 경우 사용자의 환경에서는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복사하는 과정에서 스크립트 파일 이름이 동일한 경우에는 덮어써지거나 복사가 안되서 어느 한 쪽이 동작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디렉토리에 수 십개 이상 스크립트 파일이 쌓이게 되면 관리하기 불편하죠. 그래서 여러개의 스크립트 디렉토리를 설정하는 방법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쉘에서 PATH 설정하는 형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다음과 같이 환경변수를 설정하면 됩니다.

export GASCRP=“/opt/grads/script /home/user/opt/grads/script”

이렇게 하면 동시에 여러 스크립트 디렉토리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인터프리터에서 스크립트 파일을 찾는 순서는 빈칸으로 구분된 디렉토리 리스트의 맨 앞부터이기 때문에 위의 예시에서 동일한 이름의 스크립트 파일이 두 디렉토리 모두에 들어있다면 /opt/grads/script에 있는 것을 불러오개 됩니다. 이것은 읽기 권한만 있고 쓰기 권한이 없는 스크립트중 일부만 개인적으로 수정해서 사용하고 싶을 때도 이용할 수 있겠죠.

cp /opt/grads/script/something.gs /home/user/opt/grads/script/
vi /home/user/opt/grads/script/something.gs
export GASCRP=“/home/user/opt/grads/script /opt/grads/script”

이렇게 하면 내가 변경한 something.gs 파일을 우선 불러오게 됩니다. 필요 없어지거나 다시 원래 스크립트를 사용하고 싶을 때는 수정한 파일만 삭제하면 됩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이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19년은 힘든 시기였다. 여러가지 사건으로 좌절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허무하게 느껴져서 지금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날이 많았다. 답이 안나오는 고민을 할 때는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상 찍고 오는게 목적이 아니라 산 속에 파묻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목적이다. 풍경을 보면서 걷는데 집중하다보면 생각하기를 멈추게 되어서 정신이 맑아진다. 계획이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해야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방향을 잡을 때는 오히려 생각을 덜어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 주 정도 산에 있다 오려고 지도를 뒤적거리다가 마음이 동해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어쩌면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몽골을 막연히 동경했었다. 국내 방송에서 몽골이 여행지로 소개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작은 TV 화면 속에서 광활한 초원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 발로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몽골의 어느 지역을 가볼까 찾아보다가 Tavan Bogd 국립공원을 트래킹하는 코스를 발견했다. 몽골하면 초원과 사막만을 떠올렸었는데 만년설과 빙하를 볼 수 있다니 호기심이 일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시간과 돈이다. 산을 좋아해서 알프스나 파타고니아 같이 트래킹으로 유명한 지역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유럽이나 남미에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내 휴가기간이 모자랄것 같았고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몽골은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타왕복드(Tavan Bogd) 국립공원은 몽골의 서쪽 끝에 위치하여 러시아 및 중국의 국경에 닿아있다. 나는 항공편으로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경유하여 홉드(Khovd)에 내려서 차로 이동하였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울란바타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내리니 예상과 달리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공항 출구로 나오자마자 한글로 쓰여진 판넬을 들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이 눈에 띈다. 여름은 특히 몽골 여행의 성수기이다. 겨울에는 몹시 추워서 현지인들도 힘들어할 정도지만 여름에는 선선해서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볕이 꽤 따갑지만 밤에는 쌀쌀한게 우리나라 가을 날씨같다. 일교차가 커서 해만 지면 긴 팔 옷을 꺼내입어야 한다. 서부 고지대에서는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밤 기온이 떨어진다. 실제로 겨울 옷을 준비해야 했다. 울란바타르에서 국내선 항공편을 타고 홉드 공항에 내리니 벌써 서늘해진 공기가 느껴진다. Tavan Bogd 국립공원까지는 홉드에서 차로 이틀을 더 가야한다. 홉드에서 시작된 도로는 얼마 가지 않아 비포장길로 바뀐다. 포장 도로를 확장하는 모습도 보인다. 작은 굴착기와 인부 몇이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가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 공사가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길인지 아닌지 모를 길로 달리다 보니 내가 얼마나 왔는지도 모르겠고 생체시계가 가리키는 감각도 희미해졌다.

 

 

하룻밤 자고 가기 위해 Buyant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현지인의 게르 근처에 텐트를 쳤다. 늑대같이 생긴 개가 주변을 돌며 우리 일행을 감시한다. 해가 질 무렵이라 풀 뜯으러 갔던 염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주인은 새끼 염소에게 젖을 주려고 모여든 염소들을 줄줄이 엮어서 젖을 짤 준비를 했다. 서로 모가지를 부대끼느라 뿔끼리 부딪혀 다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젖을 짜고 목을 죄고 있던 가죽끈이 풀리면 어미는 제 세끼한테 가서 남은 젖을 물린다. 새끼가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젖을 빨고 있는걸 보니 나도 문득 배가 고파졌다. 우리도 밥을 차렸다. 풀뿌리가 엉겨서 몽글몽글 솟아있는 땅바닥에 가는 빛이 비스듬 들어와 부드러운 요철이 드러난다. 오늘 하루 남은 온기가 느껴진다.

 

 

아침 해가 비치는 강가에서 물을 한 잔 떠올리면 벌레들이 날아오른다. 날개짓에 강이 반짝거린다. 입 안을 한 모금 헹궈내니 이빨이 쨍하다. 산등성이가 밝아오면 염소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사면을 오른다. 우리 일행도 출발 준비를 해야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침 식사는 빵과 차로 간단히 한다. 수태차(차를 팔팔 끓이다가 우유를 섞고 소금을 약간 넣은 일종의 밀크티)로 몸에 남아있는 간밤의 한기를 밀어낸다. 우리를 태운 사륜구동차가 강변의 비탈을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탁 트인 초원길로 들어섰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득하게 이어진다. 자동차는 소실점에 구불구불 빨려들어간다. 표지판은 커녕 도로의 경계도 없으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지 주변을 살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길이 끝나는 점을 바라보게 된다. 몽골인이 시력이 좋다는 소문은 멀리 보는 습관때문에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한참을 달리면 Tsagaan Gol을 만난다. ‘하얀 강’이다. gol[гол]이 우리말로 강이다. 구글 지도에서는 white river로 표시되어 있다. Tavan Bogd에서 빙하와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물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는 회백색의 부유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 강을 따라 올라가면 Tavan Bogd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경계에서 첫번째 캠프를 만난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 강가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까끌거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다. 씻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이 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다들 마을에서 물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와서 마시기도 하고 요리도 한다. 여행하면서 먹어본 몽골 음식의 주재료는 고기와 밀이었다. 면 요리도 있고 우리나라의 만두나 호떡같이 생긴 요리도 있는데 다 고기가 들어간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빵을 자주 먹었는데, 빵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서 먹기 시작한게 아닐까 싶다.

 

Tsagaan Gol. 사진에서 오른쪽 강변에 회백색 모래가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래 위에 찍힌 자국은 내 발자국이다. silt질과 가는 모래가 섞여있어서 푹푹 빠지지 않는다. 사진 왼쪽 끝에 보이는 녹색지붕 건물은 Tavan Bogd 국립공원 관리소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느라 분주했다. 베이스캠프까지 낙타로 짐을 실어 날라야 한다. 대기하고 있는 낙타를 보고 있는데 위험하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다. 낙타는 위험한 동물이다. 물어 뜯기든 발에 차이든 많이 아플것 같이 생기기는 했다. 낙타에 짐을 실어 보내고 사람은 걸어 올라간다. 차가 진입할 만한 길이 있으나 관리소에서는 국립공원 안으로 외부 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주민과 관리자 차량만 허가되는 것으로 보인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타고 갈 말이 없었다. 여기서부터 베이스캠프까지는 평이한 구릉을 지나는 트레일 코스다. 다만 중간에 길이 따로 없는 습지를 지나는데, 생각 없이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똥인지 흙인지 모를 진창에 빠지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말발자국이나 낙타발자국이 있는 곳엔 똥도 있다. 대신에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다. 앞서간 말과 낙타들의 발자국을 따라 조심 조심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반나절 걸어서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간 밤에 빗방울이 텐트를 때리는 소리 때문에 걱정했다. Malchin 봉에 오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Malchin은 Tavan  Bogd의 다섯 봉우리 중에서 가장 낮고 장비의 도움 없이 오를 수 있는 있는 봉우리다. 그래도 해발 4000m가 넘는다. 아마도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이 곳도 전문 산악인의 도움 없이 올라오기는 힘들것 같다. 정해진 등산로가 없기 때문이다. 자갈이 발 밑에서 구르니까 오르기도 힘들지만 낙석 위험이 있다. 사면이 불안정해서 발을 잘못 디디면 쉽게 미끄러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면 더 위험할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의 산과는 많이 다르다. 지형 공부하는 사람이 이곳에 오면 흥미로워할 것 같다.

 

봉우리 중턱에 오르니 Potanin 빙하가 시원하게 보인다. 이 명칭은 서양인 중에서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는 Tavan bogd 최고봉인 Khuiten이 구름에 가려 보인다. 저 만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바위틈을 딛고 눈밭을 지나면 Malchin봉의 정상에 도착한다. 봉우리 꼭대기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정상석이 없다. 대신 라마불교의 룽다 비스한 조형물이 있다. 현지인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상이지만 깝죽대지 않고 얌전히 사진 찍었다. 이것을 몽골어로 무엇이라고 하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산증 때문인것 같다.

 

베이스캠프 주변의  moraine 지형
Malchin봉 사면
Malchin 봉우리 중턱에서 바라본 Potanin 빙하(앞쪽). 사진 왼편에서 Alexandra 빙하(뒷쪽)가 합류하고 있다. 이곳의 빙하도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Malchin봉을 오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센베노”(몽골어 인사말)로 인사하면 오해를 해서 내려올 때는 영어로만 인사했다. 몽골 사람이 말하길 내가 몽골 사람같이 생겼다고 했다. 홉드에서 현지 운전기사를 처음 만난 날에 내 옆에 있던 가이드가 아니라 나한테 몽골어로 뭐라뭐라 말을 걸어와서 당황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둘 다 빵 터졌다. 생김새 특징을 딱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위기가 그렇다나. 장시간 차량 이동에 산행까지 체력을 소모하는 여정이었지만 나 스스로도 이곳에 기분 좋게 녹아든 느낌이었다. 여행이니까 가능한 감상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이유로 산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 틈을 벗어나 산에 기대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좋아한다. 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답이 없는 고민을 안고 왔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묻는다. 누가 보기에는 고행이지만 내가 아는 명상법이다. 이곳은 오르는건 둘째치고 베이스캠프까지 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에베레스트같은 고산에 비할 바는 안되겠지만,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 비하면 많이 불편하다. 이 불편함이 계속 지켜지길 바란다. 그래야 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 몽골 여행에 필요한 일반적인 준비사항들은 여러 블로그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쉽게 검색할 수 있다.

* 이 지역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한글 정보가 많지 않다. 대신에 서양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가서 영문으로 검색하면 이것 저것 나온다. 그래서 영문을 아는 지명은 영문으로 썼다.

CentOS 6.5가 설치된 장비에서 conda(버전 4.7.12)를 이용해 gcc4.8.5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오류가 발생하였다.

stdout: Installation failed: gcc is not able to compile a simple 'Hello, World' program.
stderr: (anaconda 디렉토리)/envs/gnu/bin/../libexec/gcc/x86_64-unknown-linux-gnu/4.8.5/cc1: error while loading shared libraries: libmpfr.so.4: cannot open shared object file: No such file or directory

mpfr 버전이 3.x가 필요한데 gcc에 필요한 패키지들을 자동으로 설치할 때 다른 버전으로 깔려서  발생한 문제였다.

버전 의존성을 체크하지 않는것 같다.

다음과 같이 하면 문제 없이 설치된다.

conda install -c anaconda mpfr=3
conda install -c anaconda gcc

 

최근에 구글 캘린더의 초대 기능을 이용한 스팸을 받았다.

찾아보니 나만 그런건 아니었다( https://techcrunch.com/2019/09/03/google-calendar-spam/ ).

이를 그냥 삭제하는 것은 거절 메세지가 상대방에게 날아가므로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나는 살아있는 사냥감이에요 하고 알리는 꼴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

 

1. 스팸신고를 한다.

초대받은 일정을 열면 메뉴에서 스팸 신고를 할 수 있다. 모바일 앱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아닌 다른 앱에서 구글 캘린더를 동기화해 사용하고 있다면 구글 캘린더 웹사이트( https://calendar.google.com )에 들어가서 처리하자. 스팸 신고한 일정은 사라진다.

 

2. 일정 표시를 비활성화 한다.

앞으로 원치 않는 내용이 초대를 통해 내 캘린더에 보여지지 않도록 하려면, "초대장 자동 추가"(Automatically add invitations)를 "아니요"(No)로 설정한다.

 

 


방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upport.google.com/calendar/answer/6110973?hl=ko&ref_topic=3418057#report_spam

R에서 언어 형식과 인코딩은 기본 시스템 로케일을 따르도록 되어 있어서 에러메세지 등은 부분적으로 한글로 번역된 내용으로 표출된다. 번역 수준이 괜찮아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에러메세지와 관련된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불편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OS의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할 수도 있고 윈도우(Windows)용 R 패키지의 경우에는 'Message Translations'는 선택해제하고 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 시스템 로케일을 바꾸는건 다른 응용프로그램에도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R에서 한글 처리하는게 껄끄러워지고, 뭔가 더 간단하면서 OS나 프로그램 설치 단계에 손대지 않는 방법을 원했다. 그래서...


1) 인터프리터에서 로케일 변경

인터프리터 프롬프트상에서 Sys.setlocale()로 로케일 변경이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help(Sys.setlocale)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현재 설정된 로케일 확인은 Sys.getlocale()을 이용한다. 이용하려는 문자열 세트를 간단하게 영어(미국)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Sys.setlocale(category="LC_CTYPE", locale="C")을 이용한다.


2) Rprofile에서 로케일 변경

인터프리터상에서 변경하는 방법은 새로 실행할 때마다 적용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일시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속 변경된 로케일을 유지하고 싶다면 사용자 홈 디렉토리의 .Rprofile 파일에 로케일 변경 명령을 쓰고 저장해두면 된다. R이 설치된 디렉토리의 Rprofile.site 파일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누군가가 평균 풍향 계산하느라 삽질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전에 나도 그랬던 기억이 떠올라서 정리합니다. 다른 각도 계산에도 적용됩니다.

 

 

1. 삼각함수 이용(u,v 변환)

풍속과 풍향(60분법, θ)으로 표현된 바람 벡터를 u, v 성분으로 분해(삼각함수)한 뒤 각각 평균하고 이 값으로부터 평균 풍향을 산출(역삼각함수)하면 된다. 풍향 평균만 계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풍속은 1이나 다른 상수로 고정하는 것이 편하다.

v = speed·sinθ

u = speed·cosθ

--> arctan(average([u])/average([v]))

 

 

2. 라디안 이용

평균 과정에서 삼각함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라디안을 이용하면 더 편해진다.

(원래 글의 "산술평균" 표현이 들어간 마지막 문장에는 명백한 문제가 있고, 다른 부분도 평균 과정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취소 표시 해두었습니다. 댓글로 지적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래된 글인데 검색에 걸리나 보네요. 구체적으로 계산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 추가해서 글을 업데이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다음 링크의 내용을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http://www.webmet.com/met_monitoring/622.html )

라디안을 이용하면 더 편해진다. 범용적으로 사용하는 60분법 단위는 산술평균 등의 계산이 바로 안되고 위와 같은 절차가 필요하지만 라디안으로는 바로 계산이 가능하다. (또한 변수를 극좌표계에서 다룰 때도 편리하다.) 각 풍향값을 라디안으로 변환하고 산술평균 계산을 하면 된다.

--> average(rad([θ]))

 

윈도우XP를 사용할 때 Windows 데스크탑 검색을 설치해서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문서 내용까지 검색되기 때문에 각종 매뉴얼이나 논문 등등 문서들을 디렉토리로 구조화하는데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냥 검색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래아 한글이 설치되어 있다면 hwp파일도 검색된다. Windows7으로 와서는 기본 검색이 이 역할을 대신하는듯 하다.

그런데 윈도우7을 사용하게 되면서 PDF 내용이 검색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문서가 포함되어 있는 디렉토리는 파일 내용이 색인되도록 설정해두었었다. 문제 원인은 iFilter였다. 문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PDF iFilter로 검색하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생략하고 해결 방법만 기록한다.

"색인 옵션"의 "고급" 옵션으로 들어가면 색인 대상이 되는 파일의 형식들을 목록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확장명 "pdf"를 찾아보면 존재하기 않거나 아이콘이 알려지지 않은 형식으로 지정되어 있거나 파일 필터가 제대로 지정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 때는 Adobe 웹사이트에서 iFilter를 받아 설치해주면 된다. 이 때 Adobe Reader는 X(10.x)가 아니라 9.x 버전을 설치하길 (개인적으로) 권장한다. Foxit의 PDF iFilter를 설치해도 된다고 하는데 테스트해보지는 않았다.

이후 "색인 옵션"-"고급"에서 "다시 색인"을 하고 테스트해보자. 파일 수가 많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원인은 알기 어렵지만 이 후에도 PDF 내용이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폴더 옵션"-"검색" 탭에서 "검색 대상"을 "항상 파일 이름 및 내용 검색"으로 변경하고 다시 테스트해보자.

아이팟(iPod)이 아이튠즈(iTunes)에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OS(Windows 7)에서는 인식을 하는데 아이튠즈에서는 인식을 못하고 계속 연결 시도만 하면서 행이 걸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문서를 참조하여 조치를 취했으나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아이팟을 초기화하는 것도 소용 없었다.

아이팟을 외장 디스크로 잡아서 살펴보기 위해 "컴퓨터 관리"에서 "iPod 서비스"를 중지시키고 다시 연결하였다. 초기화를 시켰음에도 숨겨져 있는 디렉토리 중에 음악 파일 몇 개가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OS에서 삭제하려고 해도 삭제되지 않는다. 디렉토리나 파일이 손상된 것으로 보였다. 아이팟을 포맷하고 나서야 남아있던 파일들이 사라졌고 아이팟 복구 과정을 거쳐서 아이튠즈에도 정상적으로 연결되었다.

(디렉토리/파일이 손상된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동기화 중에 발생했었던 -50 에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 조계지는 개항 때부터 일제강점기 까지 인천에서 일본 세력의 중심지였다. 그 중에서도 일본영사관이 중심에 있었다.

인천중구청

인천 중구청(일본 영사관 자리). 개항 후 이곳에 일본영사관이 자리잡았고 일제강점기 때는 인천부 청사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목조 건물이었던 것을 허물고 1933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중구청 주변으로는 역사문화의 거리라고 하여 개항장 시대의 모습을 복원하는 작업(사진 왼쪽에 플랜카드도 보임)을 진행하고 있으나 사람 냄새 나지 않는 테마파크 같았다. (외장만 저렇게 바뀌었고 내부는 대체로 바뀌지 않은듯 하며 사람들도 살고 있기는 하다) 새 구청장님은 역사 문화 복원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실지 궁금하다.



이 지역은 일제의 강점에 의해 개항장 시대 이후로도 오랫동안 일본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일본식 가옥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비록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청국식 가옥에 비해 많아서 훨씬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대체로 2층집인데 특징적인 부분은 2층의 발코니 구조이다. 집에 따라서 지붕에 처마만 덧댄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나간만 설치하여 외부로 열려있는 경우도 있고, 창이나 벽으로 막혀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본적인 2층 건물 위에 옥탑이나 3층이 증축된 경우도 보인다. 이러한 가옥 사진들을 아래에 나열하였다.






















(역사 문화 거리 조성의 일환으로 거리 주변의 집들을 이와 같은 형태로 단장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듯 하다)



홍예문. 본래 인천조계지(중구청 주변)을 중심으로 일본인 주거지가 형성되었으나 일본이 조선에서 득세하고 강점기로 이어지면서 주거 지역이 자유공원 언덕의 능선 너머(송월동, 동인천동 쪽)로 확장되었다. 이에 교통 편의를 위하여 중구 송학동의 능선을 넘어가는 터널을 뚫었다.



홍예문 위에서 구 조계지 쪽을 바라보면 멀리 인천항까지 보이고 길이 뻗어있다. 좌우에 당시 건물들이 늘어서있는 것을 상상해본다.




일제강점기 때 지배의지와 수탈강도가 강했던 목포, 강경과 같은 지방에는 관청, 은행 같은 기간 시설이나 지주의 저택, 창고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인천에서는 한양에 인접한 항구도시답게 은행이나 무역 관련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일본 제 18은행 인천지점 건물이었다. 지금은 개항장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의 모형과 개항 이후 인천항의 변천사를 전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음식업조합(중구음식업지부). 일본 제 58은행 인천지점 건물이었다.



일본 제 1은행 인천지점



대불호텔 터. 대불호텔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었다. 한양보다도 먼저 서구 문물이 유입된 곳이며 무역업과 금융업이 활발했던 곳이었으므로 이해할만 하다.



일본우선회사(해운업) 건물이었다.



인천우선회사와 주변 선창들은 인천아트플랫폼이란 이름으로 개장되어 예술활동과 문화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 역시 선창 건물이었다. 전면에 대한통운 글자가 찍혀있다. 뒷쪽으로는 최근에 지어진듯한 대한통운 건물도 보인다. 대한통운의 모태는 "조선미곡창고"이다. 이름 그대로 미곡 품목에 대한 창고업을 하였고 조선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출자해서 만든 기업이므로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위 건물의 내부



이번 답사는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주관한 답사에 참가한 것으로 건축사나 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이 오셨다. 나는 학부 때 비슷한 주제로 인천을 답사한 적이 있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던 차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몇 년만에 다시 둘러보니 아쉬운 점과 새로운 점이 있다.

몇 년 전, 인천 중구 지역은 구도심으로 동인천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차이나타운이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해서 침체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지난번 다녀왔을 때는 어떤 부분은 보수가 필요한 부분도 보였고, 여러 볼거리들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갔을 때는 토요일인 탓도 있겠지만 방문한 사람들도 매우 많았고 번쩍번쩍한 돌로 정리된 모습이 내가 알던 차이나타운이 아니었다. 빨간 패루 대신 회색의 돌패루를 보며 시작부터 뭔가 달라졌구나 싶었다.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많이 방문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잘못된 정책은 기존의 역사와 문화를 훼손할 수도 있고, 가까스로 일어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으니 차분하게 신중하게 진행되길 바란다.

새로웠던 점은 답사에 오신 내셔널트러스트 간사님이나 인솔해주신 해설사분의 설명으로 건축사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번에는 보지 못했던 산업적인 측면, 어찌 보면 수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을 더 관심있게 살펴보았다. 다른 분야에서 접근하니 새로운 자극이 되었던것 같다. 오랫만에 나선 답사였는데 계속 나서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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