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힘든 시기였다. 여러가지 사건으로 좌절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허무하게 느껴져서 지금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날이 많았다. 답이 안나오는 고민을 할 때는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상 찍고 오는게 목적이 아니라 산 속에 파묻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목적이다. 풍경을 보면서 걷는데 집중하다보면 생각하기를 멈추게 되어서 정신이 맑아진다. 계획이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해야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방향을 잡을 때는 오히려 생각을 덜어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 주 정도 산에 있다 오려고 지도를 뒤적거리다가 마음이 동해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어쩌면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몽골을 막연히 동경했었다. 국내 방송에서 몽골이 여행지로 소개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작은 TV 화면 속에서 광활한 초원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 발로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몽골의 어느 지역을 가볼까 찾아보다가 Tavan Bogd 국립공원을 트래킹하는 코스를 발견했다. 몽골하면 초원과 사막만을 떠올렸었는데 만년설과 빙하를 볼 수 있다니 호기심이 일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시간과 돈이다. 산을 좋아해서 알프스나 파타고니아 같이 트래킹으로 유명한 지역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유럽이나 남미에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내 휴가기간이 모자랄것 같았고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몽골은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타왕복드(Tavan Bogd) 국립공원은 몽골의 서쪽 끝에 위치하여 러시아 및 중국의 국경에 닿아있다. 나는 항공편으로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경유하여 홉드(Khovd)에 내려서 차로 이동하였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울란바타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내리니 예상과 달리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공항 출구로 나오자마자 한글로 쓰여진 판넬을 들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이 눈에 띈다. 여름은 특히 몽골 여행의 성수기이다. 겨울에는 몹시 추워서 현지인들도 힘들어할 정도지만 여름에는 선선해서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볕이 꽤 따갑지만 밤에는 쌀쌀한게 우리나라 가을 날씨같다. 일교차가 커서 해만 지면 긴 팔 옷을 꺼내입어야 한다. 서부 고지대에서는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밤 기온이 떨어진다. 실제로 겨울 옷을 준비해야 했다. 울란바타르에서 국내선 항공편을 타고 홉드 공항에 내리니 벌써 서늘해진 공기가 느껴진다. Tavan Bogd 국립공원까지는 홉드에서 차로 이틀을 더 가야한다. 홉드에서 시작된 도로는 얼마 가지 않아 비포장길로 바뀐다. 포장 도로를 확장하는 모습도 보인다. 작은 굴착기와 인부 몇이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가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 공사가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길인지 아닌지 모를 길로 달리다 보니 내가 얼마나 왔는지도 모르겠고 생체시계가 가리키는 감각도 희미해졌다.

 

 

하룻밤 자고 가기 위해 Buyant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현지인의 게르 근처에 텐트를 쳤다. 늑대같이 생긴 개가 주변을 돌며 우리 일행을 감시한다. 해가 질 무렵이라 풀 뜯으러 갔던 염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주인은 새끼 염소에게 젖을 주려고 모여든 염소들을 줄줄이 엮어서 젖을 짤 준비를 했다. 서로 모가지를 부대끼느라 뿔끼리 부딪혀 다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젖을 짜고 목을 죄고 있던 가죽끈이 풀리면 어미는 제 세끼한테 가서 남은 젖을 물린다. 새끼가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젖을 빨고 있는걸 보니 나도 문득 배가 고파졌다. 우리도 밥을 차렸다. 풀뿌리가 엉겨서 몽글몽글 솟아있는 땅바닥에 가는 빛이 비스듬 들어와 부드러운 요철이 드러난다. 오늘 하루 남은 온기가 느껴진다.

 

 

아침 해가 비치는 강가에서 물을 한 잔 떠올리면 벌레들이 날아오른다. 날개짓에 강이 반짝거린다. 입 안을 한 모금 헹궈내니 이빨이 쨍하다. 산등성이가 밝아오면 염소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사면을 오른다. 우리 일행도 출발 준비를 해야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침 식사는 빵과 차로 간단히 한다. 수태차(차를 팔팔 끓이다가 우유를 섞고 소금을 약간 넣은 일종의 밀크티)로 몸에 남아있는 간밤의 한기를 밀어낸다. 우리를 태운 사륜구동차가 강변의 비탈을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탁 트인 초원길로 들어섰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득하게 이어진다. 자동차는 소실점에 구불구불 빨려들어간다. 표지판은 커녕 도로의 경계도 없으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지 주변을 살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길이 끝나는 점을 바라보게 된다. 몽골인이 시력이 좋다는 소문은 멀리 보는 습관때문에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한참을 달리면 Tsagaan Gol을 만난다. ‘하얀 강’이다. gol[гол]이 우리말로 강이다. 구글 지도에서는 white river로 표시되어 있다. Tavan Bogd에서 빙하와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물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는 회백색의 부유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 강을 따라 올라가면 Tavan Bogd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경계에서 첫번째 캠프를 만난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 강가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까끌거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다. 씻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이 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다들 마을에서 물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와서 마시기도 하고 요리도 한다. 여행하면서 먹어본 몽골 음식의 주재료는 고기와 밀이었다. 면 요리도 있고 우리나라의 만두나 호떡같이 생긴 요리도 있는데 다 고기가 들어간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빵을 자주 먹었는데, 빵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서 먹기 시작한게 아닐까 싶다.

 

Tsagaan Gol. 사진에서 오른쪽 강변에 회백색 모래가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래 위에 찍힌 자국은 내 발자국이다. silt질과 가는 모래가 섞여있어서 푹푹 빠지지 않는다. 사진 왼쪽 끝에 보이는 녹색지붕 건물은 Tavan Bogd 국립공원 관리소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느라 분주했다. 베이스캠프까지 낙타로 짐을 실어 날라야 한다. 대기하고 있는 낙타를 보고 있는데 위험하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다. 낙타는 위험한 동물이다. 물어 뜯기든 발에 차이든 많이 아플것 같이 생기기는 했다. 낙타에 짐을 실어 보내고 사람은 걸어 올라간다. 차가 진입할 만한 길이 있으나 관리소에서는 국립공원 안으로 외부 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주민과 관리자 차량만 허가되는 것으로 보인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타고 갈 말이 없었다. 여기서부터 베이스캠프까지는 평이한 구릉을 지나는 트레일 코스다. 다만 중간에 길이 따로 없는 습지를 지나는데, 생각 없이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똥인지 흙인지 모를 진창에 빠지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말발자국이나 낙타발자국이 있는 곳엔 똥도 있다. 대신에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다. 앞서간 말과 낙타들의 발자국을 따라 조심 조심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반나절 걸어서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간 밤에 빗방울이 텐트를 때리는 소리 때문에 걱정했다. Malchin 봉에 오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Malchin은 Tavan  Bogd의 다섯 봉우리 중에서 가장 낮고 장비의 도움 없이 오를 수 있는 있는 봉우리다. 그래도 해발 4000m가 넘는다. 아마도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이 곳도 전문 산악인의 도움 없이 올라오기는 힘들것 같다. 정해진 등산로가 없기 때문이다. 자갈이 발 밑에서 구르니까 오르기도 힘들지만 낙석 위험이 있다. 사면이 불안정해서 발을 잘못 디디면 쉽게 미끄러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면 더 위험할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나라의 산과는 많이 다르다. 지형 공부하는 사람이 이곳에 오면 흥미로워할 것 같다.

 

봉우리 중턱에 오르니 Potanin 빙하가 시원하게 보인다. 이 명칭은 서양인 중에서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는 Tavan bogd 최고봉인 Khuiten이 구름에 가려 보인다. 저 만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바위틈을 딛고 눈밭을 지나면 Malchin봉의 정상에 도착한다. 봉우리 꼭대기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정상석이 없다. 대신 라마불교의 룽다 비스한 조형물이 있다. 현지인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상이지만 깝죽대지 않고 얌전히 사진 찍었다. 이것을 몽골어로 무엇이라고 하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산증 때문인것 같다.

 

베이스캠프 주변의  moraine 지형
Malchin봉 사면
Malchin 봉우리 중턱에서 바라본 Potanin 빙하(앞쪽). 사진 왼편에서 Alexandra 빙하(뒷쪽)가 합류하고 있다. 이곳의 빙하도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Malchin봉을 오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센베노”(몽골어 인사말)로 인사하면 오해를 해서 내려올 때는 영어로만 인사했다. 몽골 사람이 말하길 내가 몽골 사람같이 생겼다고 했다. 홉드에서 현지 운전기사를 처음 만난 날에 내 옆에 있던 가이드가 아니라 나한테 몽골어로 뭐라뭐라 말을 걸어와서 당황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둘 다 빵 터졌다. 생김새 특징을 딱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위기가 그렇다나. 장시간 차량 이동에 산행까지 체력을 소모하는 여정이었지만 나 스스로도 이곳에 기분 좋게 녹아든 느낌이었다. 여행이니까 가능한 감상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이유로 산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 틈을 벗어나 산에 기대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좋아한다. 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답이 없는 고민을 안고 왔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묻는다. 누가 보기에는 고행이지만 내가 아는 명상법이다. 이곳은 오르는건 둘째치고 베이스캠프까지 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에베레스트같은 고산에 비할 바는 안되겠지만,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 비하면 많이 불편하다. 이 불편함이 계속 지켜지길 바란다. 그래야 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 몽골 여행에 필요한 일반적인 준비사항들은 여러 블로그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쉽게 검색할 수 있다.

* 이 지역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한글 정보가 많지 않다. 대신에 서양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가서 영문으로 검색하면 이것 저것 나온다. 그래서 영문을 아는 지명은 영문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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