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중인 논문에 마지막으로 들어가면 좋겠다 상상했던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거의 두 주 동안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이래서는 스스로 정한 마감일을 넘기겠구나 싶어서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비우기가 어려워서 쓰다가 계속 멈칫거리게 되네요. 그래서 다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논문 작성과 관련된 다른 책과 함께 사서 이것은 꽃아만 두었다가 오늘 펴봤습니다. (어디서 일 못하는 애들 특징 얘기할 때 비슷한 행동을 들었던것 같기는 한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계속 불안하니 마중물 느낌으로…)

글이 좋네요. 이런 종류의 책은 내용 좋아도 글빨이 안따라줘서 잘 안읽히는 것도 많았단 말이죠. 외부에서 자료를 끌어다 쓰면서도 논문투가 아니라 본인의 느낌 속에 잘 녹여내신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논문작성법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오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니고요, 연구자에게 논문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성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논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몰랐던 지난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연구가 논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저자의 경험담을 섞어서 쓴 대목입니다. 책의 앞 부분과 뒷 부분(특히 15장)에 나옵니다. 연구책임자급이 아니라면 대부분 위에서 준 주제를 놓고 연구하는 일이 본인 업무에서 가장 클텐데요, 처음에는 연구한 결과를 논문으로 만드는게 감이 잘 안잡힙니다. 저는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도 어려워 한다니 위안이 된 것 같네요. 어려운 이유는 연구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주운 헝겊들을 다 풀어서 실오라기를 다시 한 줄기로 묶고 새로 직조한 천으로 옷을 한 벌 만드는 느낌입니다. 연구책임자가 이제 '정리'해서 논문을 내자고 했을 때 이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서처럼 정리를 해버리면 버림받고 맙니다.

 

주변 분들에게 주저자로 첫 논문을 어떻게 썼는지 종종 물어봅니다. 그림 빼고 글은 거의 다 지도교수님이 다시 쓰다시피 했다는 분도 있고, 그래도 방법이나 결과 부분은 본인이 쓴 내용이 많이 살아남았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자력으로 쓰기는 어려웠다는 경험이었어요. 곱든 밉든 그래도 봐줄 사람이 있을 때 연습을 많이 해보는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게 글쓰기 기법과는 또 다른거라서 글을 잘 쓴다는 분들도 어려움을 겪더라고요. 오히려 평소에 다른 글은 잘 못쓰는데 논문은 후루룩 내는 분도 봅니다. 논문에서 글맛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남궁석 지음)은 이공계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하는데, 이 책은 입학 후 고군분투하고 있을 대학원생과 논문은 쓰고 싶은데 감이 안잡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줄 정리된 원리나 법칙보다 비슷한 문제에 대해서 남의 고민을 듣는게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는 의생명 분야와 거리가 멀지만 분명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올 해 나온 "지리의 쓸모"란 책에 대해 좋은 말이 많아서 읽어보았다. 읽기 전에는 '교실 밖 지리여행' 같은 책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했고, 읽고 나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에서 쓸모 있다고 말하는 지리는 지리적 사고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책에서 정의하는 지리적 사고력은 지리 정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서 현재의 상태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거가 약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쓸모가 있다는 것은 활용가치가 있다는 말인데, 이 책에서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서 지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활용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뚜렷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쓸모를 이야기 할 때 지리가 의미하는게 지리적 사고력 한가지로 집중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리는 정보인가, 그 것을 전달하는 체계인가, 학문 분야인가, 아니면 하나의 사고개념인가. 이 책에서 지리의 정의를 논하길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두에서 말한 지리적 사고력이란 키워드에 집중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책의 방향이 뚜렷했으면 좋았겠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치와 영역 챕터는 가장 돋보였다. 지리적 사고의 틀로서 위치와 영역 개념을 설명하였고, 이를 통해 여러 현상을 해석하는 것으로 주제를 확장하기 위한 서론으로서 훌륭해보였다. 여기서도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영역을 영토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했다는 정도다. 이로서 공간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지역이라는 덩어리로 묶어서 사고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내용들이 책 뒷부분에서 더 힘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이 두 챕터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쓸모다.

 

저자분들이 원하는 책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지리 덕후를 위해 심층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책, 중고교 학생들을 위해 교과서를 보충하는 교양서, 정의가 무엇이든 지리가 쓸모있다고 주장하기 위한 책, 아마도 모두를 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책의  쓸모는 독자가 정하기 마련이지만, 조금 다른 '교실 밖 지리여행' 스타일의 책을 원하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한다.

 

 

‎'지도 -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한글자씩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블로그를 발견한 느낌! 어떤 철학적 사유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얼마전 방영한 KBS 다큐멘터리 '문명의 기억, 지도'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역사에서, 현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세계나 가상세계에서 공간적 프레임이 가지는 의미와 지도로 대표되는 통찰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저자
송규봉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05-1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닿을 수 없는 곳, 볼 수 없는 곳, 알려지지 않은 호기심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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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기쁨 상세보기
정효구 지음 | 작가정신 펴냄
한국 현대 시인 25인과의 아름다운 만남. 1985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활발한 문학평론을 해온 문학평론가가 쓴 현대시 평론서. 시를 더 구체적이고 진실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시인에 대한 더 자세한 이해와 정보를 제공한다. 무한이 부르는 소리, 무한에 다가가는 소리, 천상병의 <귀천>부터 말의 힘을 느껴보세요, 황인숙의 <말의 힘>까지 현대의 대표적인 시인들을 소개

서점에 가보면 각종 시 모음집에 해설집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시험을 위해서 이런 책들을 읽기도 하고 그냥 재미 삼아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험용이라면 모르겠지만, 재미삼아 읽기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책들이 많습니다. 이런 책들을 볼 때마다 차라리 주석이나 해설이 달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책도 있긴 했지만,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정독하게 만드는 시에 관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천편일률로 이것저것 나열하는데 치중하여 정작 작자의 고향이 왜 중요한지, 왜 그런 의미로 해석되는지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시 읽는 기쁨은 조금 달라보여서 구해다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시 보다는 시인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다른 책처럼 시인이 태어난 고향이나 주변 사람들, 등단한 시기 등도 설명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열거가 아니라 그 정보들이 시인과 시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주기 때문에 시인의 입장에 서서 시를 바라볼 수 있는 바닥을 깔아줍니다. 그리고 시인의 궤적을 따라가며 시를 읽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쉽게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한건데,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시인이 시 속에 숨겨져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좀처럼 보여주질 않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꽁꽁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시인은 시어의 추상화를 통해 숨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일반인이 보기에 암호 같은 단서만 남기고 숨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숨은 그림 찾기의 힌트를 주는 것에 성이 안찼는지 친절하게 위치까지 콕콕 짚어줍니다. 그래서 시인 찾기가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일단 시인을 찾고 나니 시가 무리 없이 읽혔습니다. '바다'라고만 해도 '작년 여름밤에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했던 바다'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게된 시인의 상황을 알면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바라보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텐데, 그 상황은 시인의 성격, 경험, 사회적 배경 등의 총체적 집합인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런 독자가 그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습니다. 평소같으면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어 그냥 넘겨버릴 만한 시도 의외로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유가 궁금해서 책을 되짚어 보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일부 전문가들처럼 거두절미하고 예술의 아름다움만을 강변하지 않습니다. 시를 읽는 방법을 먼저 알려주고 이를 통해 시를 읽는 기쁨을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엄두 못내던 시들도 다시 읽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는데에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한 책이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해서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예술을 읽는 기쁨을 더 알고 싶어요. 그러나 왠지 이 책의 속편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속편이 가지는 징크스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암감이 무의식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로그래머 두뇌단련 퍼즐 44제 상세보기
DENNIS E. SHASHA 지음 | 정보문화사 펴냄
퍼즐과 추리 소설로 즐기는 두되 단련하기 \프로그래밍 취업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단지 퍼즐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이 책은 문제 해결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면서 독자의 퍼즐 해결 능력을 극적으로 향상시켜 준다. 이 책에서 \스도쿠 같은 간단한 소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들에 발견법적 기법을 적용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Dr. 샤샤가 쓴 이 책은 일정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떠오른 책이 있습니다. Programming Challenges 입니다. 내용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180도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확실히 다른 내용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퍼즐 책입니다. 책 제목에 "프로그래머"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프로그래밍 퍼즐'을 예상하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물론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전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꼭 프로그래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도전해볼만 합니다. 하지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모든 문제를 풀어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풀어본 문제들은 모두 상당한 난이도였습니다. (아마 저는 보통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고등 교육과정에나 나오는 복잡한 수학 공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수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보통 사람인 저도 해냈으니까요. 풀이 시간에 여유를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다 보면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퍼즐의 재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걸 대체 어떻게 풀까"싶은 문제도 이리저리 굴리다보면 실오라기 끝을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그 다음은 집중해서 실 끝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요. 실 끝을 따라가다 보면 또다른 실뭉치를 만나는 경우나 허망하게 끊어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은 난이도 보다는 번역 상태였습니다. 완역하려는 노력도 바람직하지만, 그러다보니 직역된 문장이나 영어식 표현이 많았고 어색한 단어(예: 보편적발견법론자)도 많았습니다. 이런 어려운 주제일수록 입에서 술술 읽혀야 재미가 나는 법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가끔은 원서를 찾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원래 의미를 살리면서도 읽다가 뚝뚝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말에 맞게 흐름을 고쳐썼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볼 만한 책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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